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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구장이 시인 정수동(鄭壽銅)

상큼새콤 영화 발견 2023. 6. 2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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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은 목이 아니던가

ㅡ 까칠한 아웃사이더 정수동 ㅡ


세상이 미쳤는데 근엄하면 무엇하리
陳狂見矣謹嚴休

천하에 이름을 감추고 술집에서 죽으리
只合藏名死酒樓

아이가 태어나서 우는 까닭을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兒生便哭君知不

한번 태어나면 온갖 시름 다 겪기 때문이라네
一落人間萬種愁


조선 말엽 평생을 술과 해학으로 살다가 죽은 여항 시인 정수동(鄭壽銅)의 시이다.

김삿갓이 조부 김익순을 비난하는 시를 지은 것을 비관하여 천하를 방랑한 시인이라면, 정수동은 출신의 벽에 가로막혀 익살과 조롱으로 한 세상을 풍자한 시인이다.

정수동은 일본어 역관 출신의 가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역관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었다.


부패와 비리가 극심한 철종 시대에 벼슬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조선 말엽의 세상을 미친 세상으로 보았으나, 그렇다고 이를 변혁할 의지는 없었다.

나약한 지식인이 대개 그렇듯이 그는 분출하지 못하는 울분을 익살과 시로 풀어내면서 술에 절어 살기는 했지만 그의 익살과 시는 당대의 권력자들을 통렬하게 풍자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1808년에 태어난 정수동(鄭芝潤)은 봉이김선달과 함께 조선 말엽을 풍자와 해학으로 풍미한 인물이다.

본명은 정지윤인데,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壽) 라는 문신이 있었고, 이름 지윤의 지(芝) 자가<한서(漢書)>의 지생동지(芝生銅池, <한서> <선제기>에 나오는 '아홉 줄기 달린 금빛 지초가 함덕전(函德殿)의 동지(銅池) 가운데서 났고・・・'라는 구절로 신령하다는 뜻이다)에 있다고 하여 동(銅)자를 따서 '수동'을 별호로 삼으며 자신을 신령한 지초를 자라게 하는 연못으로 비유한 것이다.


정수동은 일찍부터 사서오경을 읽어 소년 재사(才士)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바느질하는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성품이 쾌활하여 막히는 곳이 없었다.

그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는데도 당대의 명신 김흥근, 김좌근을 비롯하여 남병철, 조두순과 교분을 맺었고, 추사 김정희의 사랑을 받았다.

"가히 세상에 드문 인재인데 어찌 술로 세월을 보내는가?
내 집에 책이 좀 있으니 사양하지 말고 와서 읽게."


김정희가 정수동에게 말했다.

정수동이 술 한두 잔을 마시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시가 되었기에 김정희는 그를 자신의 집에 기거하면서 책을 읽게 했다.

“그럼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정수동이 김정희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김정희의 집에 있는 많은 책을 불과 몇 달 만에 다 읽어 치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재주가 있으나 정착하지 못하는구나.'

김정희는 정수동이 떠나자 아쉬워하면서 탄식했다.

추사 김정희


김정희는 추사체를 남겼을 정도로 뛰어난 서예가이자 전각의 대가며, 문인화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당대를 풍미한 김정희와 세상을 떠도는 정수동은 어울리기 어려운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았는데 정수동이 책만 읽고 떠난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정수동이 살던 순조 말엽과 철종 시대는 혼탁했다.

그는 부정부패와 세도정치가 만연한 시대에 정치를 하는 것이 싫어 평생을 포의지사(布衣之士)로 지냈는데 그러다 보니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좋아하는 술도 얻어 마시거나 외상으로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돈이 생기면 반드시 외상값을 먼저 갚았다.
(자랑이다;;;)


집안일은 부인이 삯바느질로 꾸려갔다.

안동 김씨의 좌장이자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이 정수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돈 50관을 주자, 그는 포목전에 가서 베옷을 한 벌 사 입고 나머지는 외상값을 갚았다.

그러나 매일같이 술을 마시다 보니 또 외상이 밀렸다.

하루는 동네에 있는 주막에 들러 외상술을 마시려는데 주모의 눈치가 전과 달랐다.

정수동이 들어오는데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주모, 술 좀 주시오."

평소 인색하지 않던 주모라 정수동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리, 오늘이 며칟날인지 아십니까?"

주모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며칠날이긴 초하루지.
내가 아무리 술꾼이기로 날 가는 것도 모르는 줄 아나?"

"초하루에 외상을 드리면 한 달 내내 외상 손님밖에 안 온답니다."

"그러니 외상을 안 주겠다는 것이오?
맘씨가 이 엉덩판처럼 푸짐한 주모 인심이 그럴 리 있나?"



정수동이 주모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왜 이러세요? 맞돈을 내면 모를까, 내일은 드려도 오늘은 못 드립니다."

주모는 쌀쌀맞게 내뱉고 안으로 들어갔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평소에 잘 주던 외상을 안 주니 천하의 정수동이라 해도 마땅한 계책이 있을 리 없다.

'허어, 인심 한번 고약하다.'

까칠한 아웃사이더 정수동이 억지 외상술 타령을 했을 법한 주막 풍경, 조선 시대 주막은 주로 교통의 요지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정보와 인심이 오가는 장소였다. <주막>, 김홍도


혼자 우두커니 평상에 앉아서 주모를 골탕 먹일 방법을 연구하는데, 때마침 어미돼지가 새끼 돼지들을 거느리고 마당으로 들어오더니 멍석 위에 널어놓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쫓아버렸겠지만 주모가 괘씸하여 돼지들이 술밥을 다 먹도록 그냥 두었다.

한참 만에 주모가 안에서 나오더니 눈이 휘둥그레져 돼지들을 쫓고 정수동에게 화풀이를 했다.

"아니, 선달님은 어찌 돼지들이 술밥을 먹는데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무슨 심보가 그리 사납습니까?"


주모의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허허허, 돼지들에게 술밥 값을 미리 받지 않았나?"

“돼지에게 무슨 돈을 받아요?"


"그럼 외상이로군.
나는 돼지들이 맞돈을 내고 술밥을 먹는 줄 알고 쫓지 않았네.
나처럼 외상을 먹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쫓아 버렸지."


주모는 입을 딱 벌렸다.

외상을 주지 않는다고 주모에게 복수를 한 정수동은 발을 동동 구르는 주모를 두고 낄낄대면서 주막을 나왔다.

단오풍정, 신윤복


하루는 정수동이 여주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넓은 내에 이르렀는데 내를 살피자 물이 흐려서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내를 건너지 못하고 사방을 살피다가 한쪽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발견했다.

"여보시오, 이 내가 얼마나 깊습니까?"

아낙네들이 정수동을 보더니 저희끼리 얼굴을 맞대고 소곤거렸다.

“물이 목까지 찰 거요."

당시에는 남녀가 내외를 했기 때문에 아낙네들은 낯선 사내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법인데, 한 아낙네가 힐끔거리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정수동은 아낙네의 말에 난감했다.

물이 목까지 찬다니 옷을 입은 채로 건널 수도 없고, 여자들이 있으니 옷을 벗고 건널 수도 없었다.

'어허, 진퇴유곡이로다. 이를 어쩌나?'

한참을 망설이던 정수동은 결심한 듯 한쪽으로 비켜 서서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내를 건너기 시작했다.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아낙네들에게 난처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한가운데 들어갔는데도 물은 발목까지밖에 차지 않았다.

정수동은 그제야 아낙네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혀를 찼다.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정수동이 발가벗고 쩔쩔매는 모습에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남을 골탕 먹이는 짓은 수없이 했지만 남에게 골탕 먹기는 처음이구나.'

정수동은 아낙네들에게 소리를 질러봐야 자신만 창피한 일이라 묵묵히 내를 건넌 후 냇가에서 옷을 입고 둑에 앉았는데 한 사내가 다가왔다.

"여보게, 내가 얼마나 깊은가?"

사내가 정수동에게 물었다.

정수동이 중인이라 양반이 반말로 물은 것이다.

"내가 깊어 함부로 건너서는 안 될 것이오.
물이 가장 얕은 곳이 목까지 찬다오."


정수동은 사내를 힐끗 쳐다보고 점잖게 대답했다.

사내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어서 양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허! 그럼 그곳이 어느 쪽이오?"

"여기서 저기 빨래하는 여인들 있는 쪽으로 비스듬히 건너야 하오.
물속에 들어가면 옷을 벗어도 상관이 없을테니 옷은 벗어 머리에 이구려."


"고맙소."

사내는 정수의 말에 인사를 하고 즉시 옷을 벗어 머리에 이더니 내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아낙네들 쪽으로 접근하였다.

사내는 내 한가운데 이르면 물이 목까지 할 것으로 생각하여 빨래하는 아낙네들 쪽으로 다가갔는데, 아무리 가까이 가도 물은 발목까지 밖에 차지 않았다.

사내가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벌거숭이가 되어 내를 건너기 시작하자 아낙네들이 빨랫감을 들고 피하는가 하면,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했다.

사내는 그제야 장수동에게 속은 것을 알고 화가 나서 뒤를 돌아보자 정수동이 파안대소하고 있었다.

“예끼, 천벌을 받을 놈아! 물이 발목까지밖에 오지 않는데 어째서 목까지 찬다고 속이냐?"

사내가 정수동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허허. 이 친구야, 발목은 목이 아닌가?"

정수동은 낄낄대면서 멀어져갔다.

정수동은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가슴에 천하를 오시하는 뜻을 품었으나 역관의 후손이라 출세할 길이 막혀 일생을 무위도식했다.


그래도 그의 부인은 정수동을 원망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정수동의 부인이 해산할 때가 가까워져 정수에게 약을 지어오라고 청했다.

"해산에는 불수산(佛手散)이 제일이지."

불수산은 태반을 줄어들게 하여 아기를 쉽게 낳도록 하는 약으로, 궁귀탕(芎歸湯)이라고도 부른다.

정수동은 두말없이 약국으로 달려가 불수산을 지어 오다가 벗을 만났는데 그는 벗과 인사를 나눈 뒤 아내가 해산할 때가 되어 불수산을 지어 오는 길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떠벌였다.

금강전도, 정선


정수동의 말에 벗은 지금 금강산 유람을 간다며 자랑했고,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정수동은

"금강산에 가는데 내가 어찌 빠질 수 있나?
나도 함께 가세."

라며 정수동이 대뜸 따라나설 채비를 했다.

“자네 부인이 해산을 하지 않는가?"

벗이 놀라서 물었다.

“우리 아내는 아이를 쑥쑥 잘 낳아서 걱정할 일이 없다네.”

정수동은 종자를 시켜 불수산을 집으로 보내고 벗을 따라 금강산 유람에 나섰다.

이때 낳은 아들이 정낙술로 훗날 역과에 급제하여 일본어 역관이 된다.

정수동이 금강산을 유람한 뒤에 다시 묘향산을 구경하러 가자 시중에 그가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
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자 부인이 깜짝 놀라서 반겼다.

“나는 당신이 중이 된 줄 알고 간이 녹아버리는 것 같았어요."

부인이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천하의 익살꾼이고 주객인 정수동은 부인과 금슬이 꽤나 좋았던 모양이다.

“여자의 간은 콩알만 하니 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정수동은 껄껄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는 아이 달래기


하루는 정수동이 재상 집 앞을 지나가는데, 종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아이가 동전을 삼켰다며 울부짖었다.

아낙네가 어찌나 소란을 피우는지 안에서 대감이 나오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진정하시게.
그 돈이 누구 돈인가?"


정수동이 대감의 얼굴을 힐끗 살피고 아낙네에게 물었다.

"그야 제 돈입니다."

"그러면 배만 살살 쓰다듬어주면 저절로 나을 것이니 안심하게."

"정말 괜찮을까요?”

“아무렴 어떤 대감은 남의 돈 7만 냥을 삼키고도 끄떡없는데, 겨우 자기 동전 한 닢을 삼켰을 뿐이거늘 어찌 탈이 나겠는가?"

그 말을 들은 대감은 얼굴이 붉어져 어쩔 줄 몰랐다.

대감이 권세를 이용하여 매관매직한 것을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다.

당대의 명재상 조두순과 김홍근이 정수동의 재능을 아껴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그는 술과 익살로 살았으며, 격조 높은 시를 쓰다가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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