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욜로족
좌충우돌 여행기
-포의망혜로 주유천하에 나선 삼총사들
채수와 성현은 조선 세조에서 중종 때까지 문신으로 활약한 인물로, 문장이 뛰어나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그들은 승지를 지내다가 파직되자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주유천하하기로 결정했다.
마음에 맞는 무인 이소와 함께 흰옷과 짧은 도롱이 차림에 각각 어린 종을 거느리고 관동지방을 향해 길을 떠났다.
마치 배낭여행을 떠나듯이 가벼운 차림으로 여행에 나선 것이다.
채수는 훗날 평안도관찰사를 지내고 중종반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어 명성을 떨쳤으며, 성현은 《용재총화》를 짓는 등 두 사람 모두 문명을 날린 문신이다.
이소는 훗날 절충장군(折衝將軍, 정삼품 당상관 무관 벼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까지 오르는 등 전도가 양양한 청년이다.
"하하, 우리가 포의망혜길을 나섰으니 누가 금마문(金馬門, 홍문관 앞에 봉지객(鳳池客, 임금의 글을 대신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채수가 좌우를 둘러보면서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때는 춘삼월, 백화난만하고 따사로운 봄볕이 뺨을 간질였다.
“신라에 도(道)가 있는데 이를 풍류라고 한다지 않는가?"
성현이 최치원(崔致遠)의《계원필경桂苑筆>에 있는 말을 인용하여 맞장구쳤다.
풍류는 바람을 따라 흐른다는 뜻인데, 이는 자연에 동화됨을 의미하며 벼슬에 나설 때까지는 과거에 입격 하기 위해 공부하느라 바빴고, 그 후에는 알량한 벼슬살이 하느라 정신 없었다.
승지까지 지냈으니 정삼품 당상관이다.
옥자를 늘어뜨리고 당당하게 행차해도 탓할 사람이 없지만, 이들은 부러 촌스럽게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선 것이다.
"번잡한 성읍은 피해 가세. 우리가 언제 명승절경을 보겠는가?"
이소도 들뜬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세 사람은 웃고 떠들면서 한적한 길만 찾아 말을 몰았다.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조선의 산촌, 그중에도 봄의 산촌은 어느 마을이나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세 사람은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가고 싶은 곳만 찾아다니면서 길이 멀고 가까운 것이나 험하고 편한 것을 가리지 않았다.
일행이 거의 포천에 이르렀을 때 안장을 내려 말을 쉬게 하고, 짐을 풀어 소에게 먹이를 먹이며 시냇가 풀숲에 앉았는데, 저
쪽에서 촌사람 한 명이 밭이랑을 가로질러 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걸었다.
"사직(司直, 오위에 속한 정오품 군직)들은 영안도(永安道, 함경도) 시장에 사는 소 거간꾼이 아니오?"
채수 일행이 여행에 필요한 짐을 싣느라 소를 끌고 온 것을 보고 거간꾼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조선 시대에는 여행을 다닐 때 많은 짐이 필요했기 때문에 소나 나귀를 이용했다.
"그렇소."
채수가 촌사람을 살피면서 웃음을 참고 대답했다.
촌사람은 나이가 오순이 지난 듯했고, 입성을 살피니 궁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성현과 이소는 채수의 말에 그저 피식거리기만 했다.
“쌀 한 섬에 소를 줄 수 있겠소?”
촌사람이 일행의 소를 살피면서 물었다.
"허허, 우리도 팔고는 싶지만 다 팔아버리고 남은 것이라곤 짐을 실은 저 소뿐이오. 그러니 팔 수가 없소이다."
성현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대답하자 촌사람은 공연히 욕을 하면서 가버렸다.
촌사람에게 욕을 얻어먹은 세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조선 시대에는 천민이 양반을 욕보이면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우리를 소거간꾼으로 보는 것도 모자라 욕까지 하고 가네."
성현이 비로소 싱글거렸다.
모처럼 도성을 떠난 여행길이라 촌사람이 욕을 해도 노엽지가 않았다.
"우리 행색이 영락없는 거간꾼인데 뭘 그래?"
이소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촌사람에게 봉변을 당한 세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는 말처럼 세 사람은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에서 생장의 의미를 배웠으며 들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으며 포천에 도착했다.
그날은 포천의 주막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나 금화현(金化縣)에 이르니, 현감이 앞에 나와서 현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고, 금성(金城, 강원도 김화)까지는 아직 길이 멀고 사면(四面)에 인가가 없으니 현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네."
채수가 현감의 신세를 지자고 말했다.
"우리가 성읍을 피하여 여행을 하는데 어찌 현감의 신세를 지겠나? 성을 나가 민가로 가세."
채수의 의견에 성현이 반대했다.
현감에게 신세를 지면 근엄하고 틀에 박힌 선비의 행세를 해야 하는데 그런 공허한 예의범절이 싫고 뭔가 은밀한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여행을 하는데, 어찌 현감의 신세를 질 수 있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성을 나가면 민가가 있으려나?"
"조선 천지에 민가가 없겠나? 나만 따라오게."
성현이 앞서 말을 몰자 일행은 현감과 작별하고 성을 나서서 들길을 걸었지만 들길이 끝나도 민가는 나오지 않고 곧바로 산길이 시작되었다.
산 하나를 넘으면 마을이 나오려니 했는데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 속하를 믿음직하다고 여겼는데 어찌 일을 다스림에 착오가 이와 같은가."
채수가 성현에게 버럭 화를 냈다.
"뭐 그만한 일에 화를 내는가?"
"현감이 맞이할 때 쉬었으면 좀 좋아? 그랬으면 지금쯤 떡 벌어진 술상에 꽃 같은 기녀들이 시중을 들 것이 아닌가? 뭘 알고 큰소리를 쳐야지."
"기녀라니 당치도 않아. 기녀를 바랐으면 도성에 있지 뭐 하러 관동 유람에 나서?"
“이런 생고생을 시키면서 뭘 잘했다고 입을 놀려?"
"좀생이처럼 투덜거리기는………….”
세 사람이 안색을 붉히고 옥신각신하면서 길을 떠나 십리 정도 지났을 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영안을 왕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길가에서 노숙하므로, 내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활쏘기와 말 타기로 업을 삼았으니 어찌 도적 같은 것을 두려워하겠나? 길에서 자고 가세."
이소가 말했다.
"영안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노상에서 자지만 그래도 흔히 도적을 만나 물건을 잃는 일이 많은데, 족하가 아무리 용무를 믿는다고 하나 어찌 한 몸으로 많은 무리를 당하겠나?"
성현이 말했다.
이러는 동안 마침 서쪽 골짜기의 소나무 사이에 좁은 길이 나타났다.
"여기 길이 있으니 멀지 않은 곳에 인가가 있을 거야."
"길에 풀이 무성한 것을 보면 사람의 왕래가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 인기는커녕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일 거야."
"골짜기 깊숙한 곳이 오히려 큰길 옆보다는 낫지. 집이 있으면 자고 집이 없으면 나무를 베어 목책을 만들면 해 될 것이 있
겠는가."
성현이 말하고 좁은 길을 찾아가니 마침 소점이 있었다.
"여봐라. 주인 있느냐?"
채수가 호기 있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오종종하게 생긴 여자가 아이를 안고 나왔다.
"집에 주인어른은 계시지 않고 여자만 있으니 손님을 들일 수 없습니다"
여자의 말에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옥신각신하다가 그나마 인가가 있어 다행이라고 떠들면서 종들에게 밥을 짓게 한 뒤 채소밭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사방이 캄캄해져 지척이 분간되지 않자 자리를 깔고 호피며 곰 가죽을 덮고 웅크리고 앉았다.
조금 후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오는데 개가 그 뒤를 따라오면서 컹컹댔다.
"주인어른 오신다"
어린애가 소리를 지르자 여자가 나와 맞이했다.
"어르신, 밖에 손님이 가득한데 도적인 듯합니다."
여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타고 온 사내에게 말했다.
일행은 졸지에 도적으로 의심받자 웃음이 터뜨리며 그 사내를 유심히 보니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말에서 내리는 사내는 노인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밤늦게 왔으니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노인이 말에서 내려 기침을 하며 사방을 돌아보자, 일행은 노인이 하는 짓을 숨 죽이고 바라보았다.
“행장에 곰 가죽과 호피가 있으니 사족(士族, 선비)이 틀림없다."
노인이 일행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일행은 모두 갓을 기울여 쓰고 말이 없었다.
"이분은 성영공(成令公)이시다."
노인이 성현의 갓을 벗겨보고 깜짝 놀라서 물러섰다.
성현은 노인이 자신을 알아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이분은 채영공(蔡令公)이신데 두 공께서 어찌하여 이곳에 이르셨습니까?"
이번에는 채수의 갓을 벗기고 놀라자, 채수도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우리를 아시오?"
성현이 어리둥절하여 노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소인의 성은 진가인데 이조 녹사로 있습니다.
이번에 휴가를 얻어 고향에 왔습니다.
두 분이 모두 승지 벼슬에 계시지 않습니까?"
노인이 채수와 성현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승지 벼슬에서 파직되어 한가로이 보내고 있습니다.
관동을 유람하기 위해 한양을 나왔는데, 어찌하다보니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채수가 비로소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잘 오셨습니다.
누추하지만 방으로 들어오시지요."
노인이 세 사람을 청하여 병풍을 펴고 자리를 깔았다.
"소인의 집은 몹시 빈한하여 좁쌀막걸리밖에 없습니다."
노인이 종을 불러 술을 동이에 담고 두 딸을 불러 절하게 하자 모두 경의를 표했다.
"소인의 본처는 자식이 없고 아이들은 모두 종의 소생입니다."
노인은 두 딸을 성현과 채수 옆에 앉히고 차례로 술을 따르게 했다.
채수의 종에게는 피리를 불게 했는데 이소는 자기 옆에 아무도 앉지 않아 입이 나왔다.
남자는 술에 취하면 여자를 찾는다.
당대의 명성 높은 채수도 취홍이 도도하자 노인의 딸들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따님의 손을 잡아보고 싶은데 주인의 뜻이 어떠하실는지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수가 노인에게 물었다.
"딸들이 비록 촌티가 나고 못났으나 옆에 모시게 한 까닭은 영공의 기쁨을 돕고자 한 것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노인이 선뜻 승낙을 했는데 채수와 성현같이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들의 눈에 들면 첩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인이 허락을 하자 채수와 성현은 딸들의 손을 잡고 여러 가지로 희롱하면서 놀았다.
그러나 노인의 시골집 천장이 워낙 낮아 일어설 수가 없어 모두 앉아서 춤을 추며 새벽까지 놀았다.
"누구는 어린 딸을 끌어안고 희롱하는 재미가 쏠쏠했겠지."
이튿날 노인과 두 딸의 전송을 받고 길을 떠나자 이소가 툴툴거렸다.
"족하는 노여워 마시게.
자네도 알다시피 희롱만 했지 천침은 않았다네."
“흥! 내가 취해서 잠든 뒤에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아?"
이소가 하루 종일 투덜거렸으나 채수와 성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풍광이 수려한 산과 들을 구경했다.
창도역(昌道驛)에 이르렀을 때 이소가 병이 나서 수일을 머물렀을 때 일행의 말이 풀을 먹고 똥을 많이 누었다.
"누가 우리 감사가 앉는 마루를 더럽히는고."
역졸이 몹시 노한 기색을 보이자 성현이 천천히 달랬다.
"노하지 말게.
우리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찰방이 되면 마땅히 자네에게 말미를 주도록 하겠네."
"어찌 흰옷에 가는 실띠를 띤 중인이 찰방이 될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면 영안도로 대구(大口)를 싣고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두찰방이 되겠습니다."
역졸의 말에 일행이 포복절도했다.
역졸은 허름한 옷을 입은 채수와 성현이 당상관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신안역(新案驛)을 지날 때 역마를 타고 달려오는 한 관인(官人)과 마주쳤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풀밭에 엎드렸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데 행차가 이렇게 거창한가."
한 여자가 붉은 저고리와 흰 치마를 입고 역마를 타고 오므로 성현이 말했다.
"이는 참으로 장부의 행차로다.
내가 일찍이 한림원을 거쳐 은대(銀臺, 승정원)에서 벼슬하고 기생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리에서 취해 놀다가 오늘날 불우한 환경에 빠짐이 이와 같으니, 우리 처지에서 저들을 보니 참으로 천상의 신선과 같도다."
성현이 기생까지 거느리고 행차하는 시골 관리를 보고 부러워했다.
"그대가 일찍이 관서(關西)에 사신으로 갈 때 두 기생을 데리고 갔으니 저것도 한때, 이것도 한때인데 어찌 저것을 부러워하는가?"
채수의 말에 모두 웃었다.
회양(淮陽)의 속읍인 화천(和川縣)에 이르렀을 때 병이 낫지 않은 이소가 입맛이 없어 죽을 먹고 싶다고 말하자 성현이 현의 아전을 불러 옷을 전당 잡히고 죽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제 집이 비록 가난하지만 어찌 죽을 옷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아전이 저녁에 콩죽 한 사발과 꿀 한 바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무리의 두목이나 다를 바 없는 채수가 모두 먹어버렸고, 아전이 또 한 사발을 보냈으나 이번에는 성현이 먹어버리고 이소는 먹다 남은 찌꺼기만 먹었다.
“고약한 작자들 같으니.
아픈 사람은 난데 어찌 죽을 죄다 먹어치우는가?"
이소가 심통을 부렸다.
"문경지우란 목숨과도 바꾸지 않는 벗을 말하는데, 어찌 죽 한 그릇에 이다지 심통을 부리나?"
채수와 성현은 빙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일행이 추령(楸嶺)을 넘어 중대원(中臺院)에 이르렀을 때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만났는데 그 차가운 기운이 마치 겨울과 같았다.
성현은 두터운 저고리를 가져오지 않아 덜덜 떨며 정자에서 비를 피하는데 한 역졸이 막걸리를 가져와서 권했다.
“겹옷 입지 않은 사람은 비바람 속에서는 막걸리를 마셔도 무방하다."
성현이 한 사발을 기울이고 말했다.
"흥! 평소에는 천민이 마시는 술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무슨 소리야?"
채수가 나무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홑옷만 입었으니 술을 마셔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 감기에 걸리지 않아.
그러니 약으로 마시는 걸세.”
"자네가 천민의 술을 마셨으니 우리도 자네처럼 천민의 술을 마셔야 벗이라고 할 수 있겠지."
채소와 이소도 막걸리를 마시면서 크게 웃었다.
통천(通川)에서 수일을 머물 때 군수 안국진(安國珍)과 더불어 놀고, 남으로 고성군(高城郡)에 이르니 마침 홍자심(洪子深)이 군수로 있었는데 홍자심 또한 이들의 절친한 벗이었다.
일행은 삼일포(三日浦)에서 놀다가 다시 동해의 봉화봉(烽火峰)에서 노니 그 기이한 경치야말로 비할 데가 없었다.
홍자심이 그 봉 이름을 승선대(承宣臺)라고 지었는데, 채수와 성현이 모두 승지를 지냈기 때문이다.
일행은 바닷고기를 잡아서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이것은 오미자술인데 정력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불로장생한다네."
홍자심이 한양에서 귀한벗들이 왔다고 오미자술을 꺼내 한 잔씩 권하고는 깊숙이 감추었는데 성현이 잠든 체하다가 살그머니 훔쳐 마시자 이소가 그것을 보고 병을 채서 달아났다.
"족하는 내 술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가?"
성현이 노하여 몽둥이를 가지고 쫓아왔다.
"비루하게 혼자 마시니 다른 사람은 마시지 못하게 하겠다"
다급해진 이소는 병 속에 침을 뱉어 남이 먹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고 채수는 둘이 술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났다.
“이 더러운 놈아, 술에 침을 뱉으면 어떻게 해?"
채수가 노발대발하여 술을 땅에 쏟아버리자 술 한 병이 모두 없어졌다.
오미자술 때문에 일어난 촌극은 당대의 명사들이 벌인 일이 서민들이 교우들과 함께 하는 그것과 다름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성현은 젊었을 때 두 친구와 함께 여행한 이야기를 <용재총화>에 기록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