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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기녀(妓女)와 그녀를 사랑한 선비(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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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생


월악산이 무너져도

변치 않는다고?

- 기생들의 반란 -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연애를 하고 가슴 깊이 사랑한 여인 중에는 기생이 많았는데 남녀가 자유롭게 어울릴 수 없던 시절이라 남자들이 그나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가 기생이었다.

그러나 기생은 노류장화다.

기생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아 남자의 순정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남자를 적극적으로 유혹하여 재물을 빼앗는 기생들이 많아진 것인데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즉 상인을 위주로 한 자산가가 등장하고 광작으로 부를 쌓은 부농이 출현했으며, 이에 따라 전통적인 양반 사회가 급속히 붕괴된 것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물신주의가 팽배해졌고, 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진 탓에 기생들도 순정보다는 재물에 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사마천이 이야기한 것처럼 부는 권력이다.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 없던 시절, 선비는 기생에게 순정을 바쳤고 기생은 선비의 마음을 가슴으로 받았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오면 순수하던 이들의 사랑에 대가가 붙기 시작한다. <기녀와 선비>, 작자미상.


조선 시대 한양에사는 전목(全穆)이라는 선비가 우연히 충주에 갔다가 기생 금란(金蘭)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금란이 절색이기도 했지만 선비는 혼을 빼앗는 듯한
기생의 교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금란은 날마다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귀가 간지럽게 아양을 떨었는데 금란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그러나 전목은 부유한 선비가 아니었기에 돈이 떨어지
자금란과 헤어져 한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떠날 터인데 정녕 너를 잊을 수가 없구나."

전목이 금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꽃다운 기생과 헤어지려니 철석같은 남자의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소첩도 나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금란이 눈웃음을 치면서 전목에게 교태를 부렸다.

“네가 나를 잊지 않는다니 반드시 다시 오마."

"정녕 소첩이 나리를 기다려도 되는 것이옵니까?"

"내 너를 보러 온다고 하지 않느냐?
기생을 일컬어 노류장화라고 하여, 내가 없으면 누구나 꺾으려고 할 텐데 다만 나는 그것이 걱정이다."

“소첩의 마음은 오로지 나리에게 있습니다.
제 사랑을 의심하십니까?"

금란은 전목의 가슴속을 파고들면서 헤어지는 것이 슬프다는 듯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고, 눈물까지 흘리는 금란을 보자 전목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전목은 금란과 이별주를 나누고 말했다.

“경솔히 남에게 몸을 허락하지 마라."

월악산


“월악산(月嶽山)이 무너질지라도 첩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월악산은 충주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명산으로 월광폭포, 망폭대, 학소대, 수경대, 자연대, 수렴대 등의 8경과 상봉(上峯)인 국사봉(國同峯)에서 바라보이는 일망무제의 풍광이 유명하다.

기생이 교태를 부려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듯이 남자도 기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금란과 지내면서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던 전목도
한양으로 올라가자 소식이 끊겼고 돈을 마련하여 금란
을 보러 오겠다더니 감감무소식이었다.

금란은 전목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전목이 먹고살 만한 재물을 주고 간 것도 아니고,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었다.

젊디젊은 여자가 한 세월을 혼자 살 수 없어서 단월역의(斷月驛)의 승(丞, 관직명)을 사랑하게 되었다.

단월역 승은 영남에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역참의 관리다

전목은 충주를 떠났으나 충주에서 사람들이 오면 금란의 소식을 묻곤 했는데 생각 같아서는 돈을 마련하여 금란에게 가고 싶었으나 기생에게 돈을 펑펑 쓸 정도로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하루는 충주 사람이 와서 금란이 단월역 승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여인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어찌 변심을 했는고?'


시 짓는 선비


전목은 실망하여 금란에게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다.

풍문에 들으니 네가 단월역 승과 정분이 나서
聞汝便憐斷月丞

밤이 깊으면 으레 역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더구나
夜深常向驛奔騰

때가 오면 반드시 삼릉장(三稜杖,세모진 곤장)을 들고
何時手執三稜杖

돌아가 월악산이 무너져도 변치 않는다던 맹세를 따지리라
歸問心期月嶽崩

금란은 전목의 시를 받고 가슴이 뜨끔했지만, 삼릉장을 앞세워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고 따지겠다니...금란은 무작정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지 말라는 전목이 가소로웠다.

기생이니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전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옛 맹세를 들추어 곤장을 때리겠다는 시에 노여움이 일었다.

시 짓는 여인


금란은 전목에게 답시를 보냈다.

북쪽에 전 서방님이 있고 남쪽에는 승이 있으니
北有全君南有丞

첩의 마음 정할 수 없어 뜬구름 같네요
妾心無定似雲騰

만약 철석같이 맹세한 것처럼 월악산이 무너진다면
若將盟誓山如變

월악산은 지금까지 수없이 무너졌을 거예요
月岳于今幾度崩

금란의 시는 다분히 해학적이다.

기생으로서 맹세한 사람이 전목뿐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니 기생들의 맹세대로 이루어진다면 월악산이 몇 번이나 무너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기생에게 수절을 강요한 전목을 금란이 통쾌하게 비판한 것인데 월악산이 수없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한 금란의 마지막 시구는 많은 시인 묵객이 절묘한 표현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 구절이다.

풍속도8첩병풍 - 기방쟁웅 (妓房爭雄)김홍도


기생은 남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노래와 춤이 뛰어나고 금기서화에 능해도 기예를 익히는 자체가 남자를 위한 것이며 남자를 즐겁게 하고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교태를 부린다.

절개를 지키고 예술적 경지에 오른 기생도 있지만, 대부분 남자에게 잘 보여 첩이 되는 것이 기생의 목적이며 특히 고관이나 부호의 첩이 되는 것은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고관이나 부호의 첩이 되지 못하면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30세가 되면 일패에서 이패로 전락해 은근짜가 되고, 나이가 더 들면 삼패로 떨어지며 삼패는 작부나 다름없는 여자로 늙어서 병이 들면 비렁뱅이로 전락한다.

그런 까닭에 첩이 될 수 없는 기생은 부호들에게 돈을 받아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려고 한다.

관북 지방에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들을 유혹하여 파멸로 빠뜨리는 팜므파탈 같은 기생이 있었는데 서울의 한 선비가 관북 지방을 여행하다가 그 기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기생이 온갖 교태를 부려 유혹했기 때문에 선비는 많은 돈과 패물을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비는 지니고 있던 돈과 패물이 모두 떨어졌다.

선비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생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시면 언제 오시겠습니까?"

기생은 선비를 마지막까지 유혹한다.

선비가 어디 가서든지 돈이나 패물을 마련해 오기를 바란 것이다.

"기약은 할 수 없다만, 내 반드시 너를 보러 올 것이다."

"그 말씀을 어찌 믿겠나이까?
이 몸은 노류장화니 길 가는 나그네들이 함부로 꺾으려고 할 것입니다."

"너는 나를 위하여 절개를 지켜라.
내 반드시 돈을 마련하여 다시 올 것이다.”

“그러시면 증표를 하나 주십시오."

“내 이미 많은 패물을 주지 않았느냐?"

“낭군과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첩을 사랑하여 많은 패물을 주셨지만 신체발부(身體髮膚)만 하겠습니까?
낭군의 이 하나를 뽑아주시면 그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낭군을 위하여 절개를 지키겠습니다."


머리 단장하는 젊은 기생과 이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퇴기. 기생의 현재와 미래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기도>, 유운홍작.


선비는 자신을 사랑하는 기생의 마음이 지극하다고 생각하여이 하나를 뽑아주었지만, 선비는 한양에 당장 올라오지는 않았는데 관북 지방에 있는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기생에 빠진 선비를 위하여 선뜻 돈을 빌려주는 친지들이 없자 선비는 실망하여 한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날을 걸어서 철령에 이르니 아리따운 기생이 떠올라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한 사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철령을 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사내가 어찌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가?

선비는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사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눈물을 훔치면서 어느 지방의 기생을 너무 사랑하여 이를 하나 뽑아주고 오는 길인데, 이별이 슬퍼서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비는 사내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하여 지방과
기생의 이름을 물으니 자신을 사랑한다던 그 기생이다.

'참으로 고약한 계집에게 속아 이를 뽑아주었구나.'

선비는 기생에게 가서 이를 찾아 오라고 종을 보냈는데 종이 기생에게 달려가 선비의 말을 전하고 이를
돌려달라고 했다.

"네 주인의 이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네가 찾아서 가져 가거라."

기생은 이가 가득 든 자루를 종 앞에 던지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기생에게 서약을 하는 선비


그 기생은 수많은 선비에게 거짓 약속을 하여 이를 뽑게 만든 것이었는데 기생의 유혹에 빠진 사내들의 이가 자루로 하나였다는 얘기는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손님을 유혹하여 재물을 빼앗는 조선 후기
기생들의 풍속을 볼 수 있어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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