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00분
감독:
제시카 팔뤼 (Jessica Palud)
각본:
제시카 팔뤼 (Jessica Palud)
로레트 폴만스 (Laurette Polmanss)

출연진: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Anamaria Vartolomei) – 마리아 슈나이더 역
셀레스트 브룬켈 (Céleste Brunnquell) – 누르 역
맷 딜런 (Matt Dillon) – 말론 브란도 역
마리 질랭 (Marie Gillain) – 마리 크리스틴 역
이반 아탈 (Yvan Attal) – 다니엘 젤랭 역
스탕리슬라 메아르 (Stanislas Merhar) – 에이전트 역

영화 <비잉 마리아>는 십대 마리아 슈나이더(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분)가 촬영장에서 배우인 아버지 다니엘 젤랭(이방 아탈 분)의 연기를 지켜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집에서는 그녀의 어머니(마리 질랭 분)가, 그들을 떠났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마리아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마리아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아버지의 세계에 강하게 이끌립니다. 집에서 쫓겨난 마리아는 삼촌(조나탕 쿠지니에 분)의 집에서 잠시 안정을 찾습니다.
따뜻한 성품의 이 삼촌은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데, 그 중 한 아이는 훗날 2018년에 <내 사촌 마리아 슈나이더: 회고록>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됩니다.
제시카 팔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비잉 마리아>는 바로 그 바네사 슈나이더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며, 특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2년 작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출연했던 마리아 슈나이더의 경험과, 그 영화가 낳은 논란,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가 겪은 수치스러운 대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리아 슈나이더의 이야기는 비극적이면서도 종종 분노를 자아내는 서사입니다. <비잉 마리아>는 그 복잡한 상황을 잘 포착해냅니다.
10대 소녀가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주세페 마지오 분)에게 매료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일은 아닙니다.
그는 마리아를 오디션이나 스크린 테스트도 없이 바로 캐스팅하여, 차기작에서 마를론 브란도와 함께 출연하도록 합니다.
어떤 배우라도 이런 기회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를론 브란도는 단순한 유명 배우가 아니라, 20세기 가장 전설적인 배우 중 한 명이었습니다. 현명한 캐스팅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맷 딜런이 브란도 역할을 맡았다는 점인데, 그는 추상적인 슬픔을 지닌 감성으로 이를 연기해냅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께는 <비잉 마리아>가 어떤 감정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집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이 학생 때였고, 당시 마리아 슈나이더의 나이와 비슷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본 적 없는 영화였죠.
브란도와 슈나이더가 비어 있는 아파트 안에서 만들어내는 그 역동은 관객으로서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연구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대본의 대사를 벗어나서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요?
두 배우는 믿기 힘들 정도로,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제게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폴린 케일이 남긴 유명한 극찬도 읽었고, “논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는 상영 금지를 당하고, 외설적이라며 낙인찍혔으며, 하나의 스캔들이자 사회적 센세이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버터 장면”이 촬영 당시 마리아 슈나이더에게 사전 설명 없이 갑작스럽게 강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르톨루치는 그녀의 “날 것의 반응”을 원했고, 그것이 카메라에 담기길 바랐습니다.
그 장면은 실제로 삽입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었지만, 슈나이더는 해당 장면이 예정된 줄 몰랐습니다. 결국 스크린에 담긴 것은, 강압적 상황에 속아버린 한 젊은 배우의 충격과 트라우마에 가까운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깊은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베르톨루치의 이런 기만은 단지 잔인하고 부당할 뿐 아니라, 배우의 창작 과정에 대한 무지로 느껴졌습니다. 좋은 연기란 언제나 ‘첫 순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베르톨루치는 그녀가 그걸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가 베르톨루치의 영화들을 사랑하고, 마를론 브란도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화해시키는 게 아니라, 동시에 끌어안는 것이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여전히 강렬하고 중요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마리아 슈나이더가 겪은 일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브란도 또한 베르톨루치에게 조종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나는 다시는 감정적으로 나 자신을 소모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 내면 깊숙한 곳을 침해당한 기분이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열린 구조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중년 남성 폴(마를론 브란도)의 우연한 만남이 익명 관계로 이어집니다.
그들 사이의 나이 차는 매우 큽니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브란도와 대등하게 맞섭니다. 이는 오히려 훨씬 더 경험 많은 배우들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브란도는 당시 <대부>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으며, <탱고> 속의 비탄에 잠긴 폴은 비토 콜레오네와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마리아 슈나이더는 이전에도 몇몇 작품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적은 있었지만 사실상 무명이었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의 논란은 통제 불능이었고, 특히 그녀를 향한 반응은 더욱 거칠었습니다. 그녀는 원하지 않았던 섹스 심벌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버터 장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어했지만, 그 장면의 촬영 과정에 대한 그녀의 항의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약물에 빠졌으며, 그녀의 커리어 역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녀는 영화 산업에서 여성들이 받는 대우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불필요한 노출 장면에 반대하고, 여성 감독의 증가를 지지했습니다.
마리아 슈나이더의 삶은 가장 안타까운 경고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비잉 마리아>를 보고 있으면 ‘만약에’와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릅니다.

특히 영화 초반,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보며 빛나는 얼굴을 한 바르톨로메이의 모습이 떠오를 때 그렇습니다. 그녀는 연기에 매혹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열광했으며, 브란도처럼 자유로운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것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무제한의 자유”는 언제나 그 어두운 면을 동반합니다. 바르톨로메이의 고통스러운 연기는 보는 이에게 아픔을 줍니다. 그 배신감은 무너질 듯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팔뤼 감독은 이 이야기를 공감과 정직함으로 다가섭니다. <비잉 마리아>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후 마리아가 겪은 문제들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인간관계를 끊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때때로 반항적으로 행동합니다. 바르톨로메이는 그런 어두운 감정의 깊은 곳까지 도달합니다. 비극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 참극을 막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에 누군가 이 여성을 도와주기만 했더라면, 보호해주기만 했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너무도 명확해집니다. <비잉 마리아>를 보며 제가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상실감이었습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초반 장면에서, 슈나이더는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며 거대한 배경 속에 작게 보이지만, 그 공간을 장악합니다. 그녀의 깃털 달린 코트는 바람에 휘날리며 공기처럼 가볍고, 액체처럼 흐르는 인상을 줍니다.
마치 바람이 그녀를 앞으로 밀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존재였고, 시대를 뒤흔드는 젊음이자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미래 그 자체였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마리아 슈나이더의 진정한 연기력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벗어나서 보고 싶다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1975년 영화 <승객(The Passenger)>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녀는 그 작품에서 또 다른 노련한 배우 잭 니콜슨과 함께 연기하며, ‘무엇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선명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한 평론가는 2005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그녀의 연기에 대해 “숨막히는 자발성(breathtaking spontaneity)”이라 평했고, “그녀는 계산도, 방식도, 꾸밈도 없이 반응한다. 그녀의 반응은 명료하고 복잡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새로운 발견이 되는 배우입니다. 오늘날에도 마리아 슈나이더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비잉 마리아>는 그런 그녀를 향한 공감과 상실로 진동합니다.
2012년, 패티 스미스는 마리아 슈나이더를 추모하는 노래를 썼습니다.
“우린 몰랐지
그 나이의 힘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그 모든 공허함
야성적인 머리카락
슬픈 눈동자
흰 셔츠, 검은 넥타이
넌 나의 전부였어
회전목마의 고리를 움켜쥐었지
지옥과 천국을 넘나들며 탱고를 췄어.”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거진 드림스 2025(Magazine Dreams 2025) (0) | 2025.05.28 |
---|---|
어세스먼트 2025(The Assessment 2025) (0) | 2025.05.28 |
굿 아메리칸 패밀리 2025(Good American Family 2025) (0) | 2025.05.26 |
블랙 백 2025(Black Bag 2025) (0) | 2025.05.26 |
디 액터 2025(The Actor 2025) (0) | 2025.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