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공포 (Horror), 심리 스릴러 (Psychological Thriller), 미스터리 (Mystery)
상영시간: 약 92분
감독:
라이언 J. 슬론 (Ryan J. Sloan)
각본:
아리엘라 마스트로얀니 (Ariella Mastroianni),
라이언 J. 슬론 (Ryan J. Sloan)

출연배우:
아리엘라 마스트로얀니 (Ariella Mastroianni) – 프랭키 로즈(주인공)
르네 가그너 (René Gagner)
마리안 굿델 (Marianne Goodell)
그랜트 슈마허 (Grant Schumacher)
잭 앨버츠 (Jack Alberts)
엠마 피어슨 (Emma Pearson)

프랭키 로즈(아리엘라 마스트로얀니 분)는 영화 <게이저>가 시작되자마자 곤경에 빠진 인물입니다.
그녀는 '시간인지불능증(dyschronometria)'이라는 희귀한 신경학적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 질환은 시간 감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줍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녀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목소리는 그녀 자신의 것입니다.
그 목소리는 그녀에게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는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현실 감각이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집중은 종종 낯선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만, 엿보기(voyeurism)는 결코 기적의 치료법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프랭키처럼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날 밤, 프랭키는 주유소에서 일하던 중 길 건너 아파트 창문 너머로 무언가 폭력적인 상황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한참을 기다리다 점점 화를 내는 고객을 눈치채지 못해 결국 일자리를 잃고 맙니다.
이 일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의사들이 경고했던 질환의 진행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프랭키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재(absence)'는 단순한 건망증 그 이상입니다. 처음엔 몇 분, 다음엔 몇 시간, 심지어 며칠까지 그녀는 점점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배반입니다.
“멍해지는 기분이 들면, 테이프를 되감아,”라고 과거의 프랭키가 녹음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상기시킵니다.
이 목소리는 오래된 워크맨에서 흘러나오고, 프랭키는 이 워크맨을 그 어떤 남아 있는 가족보다 가까이에 둡니다. 그녀의 상태는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에게 힘든 고통을 안겨왔습니다.

그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현재에 머물기 위해 애쓰지만, 점점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어린 딸(엠마 피어슨 분)이 시어머니(마리안 굿델 분)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간을 되감거나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그랜트 슈마허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날 밤의 기억이 불분명하다는 사실은 프랭키에게 끝없는 고통을 안깁니다.
영화는 대부분 밤 시간에, 뉴저지의 음산하고 산업화된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마테우스 바스토스 촬영감독이 16mm 필름으로 담아낸 장면들은 거칠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게이저>는 이처럼 암울하고 파멸로 향하는 인물이 풀고자 하는 미스터리를 그립니다. 그 미스터리는 그녀의 믿을 수 없는 기억 자체가 얽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프랭키가 주유소 맞은편에서 목격한 장면이 가정폭력이었든, 아니면 더 이상한 일이었든, 그날 밤 그녀가 보았던 여성(르네 가그너 분)은 며칠 후 자살 유족 지원 모임에서 프랭키에게 접근해옵니다.

그 여성은 자신도 프랭키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지배적인 오빠(잭 앨버츠 분)로부터 도망쳐 그날 밤 아파트를 빠져나왔으며, 도시를 떠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프랭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그 여성이 사라지지만, 프랭키가 예상했던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경찰이 등장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가 하나둘씩 쌓여갑니다.
프랭키는 간헐적으로 의식을 잃는 혼란 속에서 자신이 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마치 나선처럼 계속 맴도는 구조 속에서 <게이저>는 필름 누아르 형식을 띱니다.
프랭키를 억누르는 그림자들은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왜곡된 기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스티븐 매튜 카터의 인상적인 누아르풍 음악은 꾹꾹 짜내는 듯한 색소폰과 거친 전자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와 함께 불안하게 뒤얽혀 갑니다.)
프랭키가 모텔, 공장, 습지가 점점 이어지는 황량한 지역을 헤매며 진실을 추적할수록, 현실은 점점 무너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영화의 구조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 <추격자(Following)>와 <메멘토>를 떠올리게 하며, 실제 제작 과정에서도 이들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게이저>는 마스트로얀니와 감독 라이언 J. 슬론이 공동 각본을 쓰고 전액 자비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이들은 주말마다 촬영을 진행했고, 2년 반에 걸쳐 4월과 11월에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놀란 감독 역시 <추격자>를 16mm 필름으로, 1년간 틈틈이 촬영했습니다. 마스트로얀니와 슬론은 그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단서들을 관객이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며, 마지막에 그것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게이저>에서 이 접근 방식은 ‘전체적인 큰 그림’보다는 기억과 공포로 이루어진 감각적인 퍼즐을 탄생시킵니다.
이는 이 영화의 감독들이 가진 일종의 진정성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정신 상태를 탐험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관객을 그녀와 같은 어둠 속으로 이끕니다.

프랭키는 증명할 수 없는 의심과 떨쳐낼 수 없는 불안, 그리고 메울 수 없는 기억의 공백 속에서 점점 떠내려갑니다.
이 영화에서 엿보기는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보다는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Up)>이나 코폴라의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같은 음모론적 시네마의 방향에 더 가깝습니다.
많이 볼수록 그녀는 더 알지 못하게 되며,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낄 뿐입니다. 영화의 공포는 서서히, 꿈속 같은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악몽처럼, 프랭키의 공포는 호기심과 함께하고 있으며,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은 오히려 잠재적인 용기를 끌어냅니다.
<게이저>는 깊은 외로움 또한 담아냅니다. 그것은 그녀의 지각 능력이 무너져 가는 과정뿐 아니라, 세상이 그녀와 함께 사라져 가는 듯한 느낌에서 비롯됩니다.
코로나 시기의 고립된 환경에서 영화가 기획되고 촬영된 만큼, 마스트로얀니와 슬론은 뉴저지를 마치 사람도, 건물도 사라진 유령 도시처럼 묘사합니다. 그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감정이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이들은 그 공간을 날카롭고도 진실된 시선으로 스크린에 구현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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