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총 4부작 (각 에피소드 약 40~50분 분량)
감독:
조디 맥베이-슐츠 (Jody McVeigh-Schultz)

출연:
블레이크 로빈스 (Blake Robbins)
케론 윌리엄스 (Keron Williams)
잘릴 하산 (Jalil Hasan)
제작 총괄:
마크 월버그 (Mark Wahlberg)

4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파이 하이(Spy High)>를 처음 봤을 때도, 보는 내내도, 블레이크 로빈스를 그저 ‘인증된 얼간이’로 치부해버리기는 참 쉽습니다.
인터뷰 장면에서 그는 약간 건방진 괴짜처럼 보이며, 창문 무늬가 있는 스포츠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 커다란 금목걸이를 착용한 그의 모습은 마치 앤드루 테이트를 젊게 만든 듯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감독 조디 맥베이-슐츠는 <Spy High>를 통해 우리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에게 자동적으로 느끼는 동정심을 교묘히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 ‘못마땅한’ 사람을 벌주기 위해 얼마만큼 사생활과 권리를 포기할 의향이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블레이크 로빈스와 그의 부모는 펜실베이니아 교외의 부유하고 명망 높은 공립 학군을 상대로 한 가지 매우 특이한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바로 학교 측이 학습용으로 지급된 노트북의 웹캠을 통해 블레이크와 다른 학생들을 몰래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학교는 블레이크가 자신의 방에서 노란색 물체를 들고 있는 흐릿한 스크린샷을 얻은 걸까요?
그들은 그 장면을 보고 블레이크가 마약 거래를 한다고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그 물체의 정체가 실제로 무엇인지 시리즈 후반에 밝혀지는데, 아마 그 순간엔 웃음을 참기 어려우실 겁니다.)
한편으로는, 로빈스 가족이 기술과 교육행정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일부 변덕스러운 교직원들이 문제아로 낙인찍은 학생들을 감시하고 징계하기 위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이 계속되자 지역사회는 점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로빈스 가족의 과장되고 기이한 행동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며, “Blake Robbins is full of shxt” 같은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방 안에서 몰래 촬영하는 행위에 분노하던 사람들도, 그 대상이 짜증 나는 아이거나 과하게 소송을 거는 가족일 경우라면 입장을 바꾸더라는 것입니다.
<Spy High>는 종종 마치 넷플릭스의 <아메리칸 반달(American Vandal)>의 잃어버린 시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블레이크는 그 시리즈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처럼 보이며, 덜렁거리고 유치한 허세와 건조한 유머를 뿜어냅니다.
그는 “내가 15살 때 자위한 사진은 다 어디 갔냐고요? 나 진짜 많이 했어요. 당신도 했겠죠?” 같은 말을 내뱉기도 하며 시청자에게 웃음을 안깁니다.
그의 건방지고 얄미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가 다른 아이들에게 공감을 표하는 순간조차도 어딘가 자기 중심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아메리칸 반달>이 훌륭하게 풍자했던 그 전형적인 스트리밍용 다큐멘터리의 외형—음산한 음악, 인터뷰 장면 위의 기록 영상 등—을 충실히 따릅니다. 형식적으로는 참신하지 않지만, 전달력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맥베이-슐츠 감독은 유쾌한 캐릭터들을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동시에, 이 사건이 실제 아이들의 삶과 사생활에 끼친 진지한 피해도 놓치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리고 그 균형을 꽤 성공적으로 맞춰냅니다. 전형적인 ‘진실 범죄 다큐’의 스타일과 블레이크의 독특한 태도에서 비롯된 블랙 코미디적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이야기를 경쾌하게 전개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캐릭터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3화에서는 아예 초점을 바꾸어, 이 사건에서 더 분명히 동정받을 만한 대상들에게 집중합니다.

바로 감시에 더 많이 노출되었던 흑인 학생들입니다. 슬프게도, 케론 윌리엄스나 잘릴 하산 같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블레이크만큼 깊이 있게 조명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야기의 중심 인물도 아니고, 카메라 앞에서 과장되게 표현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조용한 태도 속에는 부유하고 백인이 다수인 지역사회에서 흑인 학생들이 느끼는 미묘한 차별과 마이크로어그레션의 그림자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Spy High>는 다시 블레이크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시청자는 이 시리즈가 결국 ‘동정심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아이들을 몰래 감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맥베이-슐츠 감독은 ‘그 잘못된 감시로부터 우리가 정말 구제하고자 하는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설령 그 대상이 가장 짜증 나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마 이 싸움은 이미 졌는지도 모르겠다는 뼈아픈 인식을 남깁니다. 시리즈의 한 장면에서는 블레이크가 한 상원의원에 대한 통계를 말하려다 잠시 멈추고 시리에게 묻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컴퓨터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듣도록 허용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농담이자, 동시에 <Spy High>라는 작품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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