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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199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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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는 마음은 올바른 곳에 두었으나, 실행 면에서는 어긋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92년 4월 29일, 로드니 킹 판결이 있던 날을 배경으로 하며, 강도 스릴러 요소와 폭발적인 인종적 분위기를 균형 있게 담으려 노력하는 단순한 영화입니다. 

 

타이리스 깁슨이 연기한 싱글 아빠 머서(Mercer)는 십대 아들 앙투안(Antoine, 크리스토퍼 아뮈엘)을 주변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 하지만, 로웰(고(故) 레이 리오타)과 그의 무리가 이끄는 강도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영화 속에는 총격전, 자동차 추격전, 영웅적인 행동과 인생의 교훈이 등장하지만, 액션이나 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지는 못합니다.

감독 아리엘 브로멘의 “1992”는 캐서린 비글로우의 “디트로이트”와 존 카펜터의 “13일의 금요일”을 한 데 섞어 놓은 듯한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흑인 주인공이 한밤중에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강력한 힘과 고통스러운 예의를 모두 시험받는 구조를 제시합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에서 어느 정도 스릴을 느낄 수 있긴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장르적 요소를 줄이고 영화가 초반에 제시한 힘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더 집중하길 바라게 만듭니다.

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브로멘과 사샤 펜이 공동 집필한 직설적인 대본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머서와 앙투안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머서는 6개월 전에 출소했으며, 과거에 몸담았던 갱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현재 공장에서 유지 보수 업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머서는 당연히 앙투안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며, 아들이 학교가 끝난 후 바로 집으로 돌아오라고 요구합니다. 앙투안은 아버지가 자신을 가상의 감옥에 가두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리긴 빅비(스콧 이스트우드)와 그의 아버지 로웰 사이의 관계입니다. 리긴은 로웰의 갱단이 머서가 일하는 공장을 털어 1천만 달러 상당의 백금을 훔치자는 돈벌이 계획을 제안합니다. 이때 로드니 킹 판결에 따른 폭동이 이들의 계획을 위한 완벽한 알리바이가 되어줍니다.

이 두 갈등 중, 머서와 앙투안의 관계가 훨씬 더 강렬합니다. 이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1990년대 후드 영화 속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머서는 여전히 자신의 폭력적인 과거로 인해 동네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깁슨은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으로, 조금이라도 감정을 표출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가 일할 때 입는 커다란 작업복에 몸이 휩싸여 있는 자세도 그러한 감정을 잘 나타냅니다. 이는 내면에서부터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머서가 앙투안의 복수심에 찬 열망과 충돌할 때, 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긴장감이 형성되지만, 이는 경찰 검문소와 같은 상황에서 대사나 설정의 직설성으로 인해 종종 깨지곤 합니다.

머서와 앙투안의 관계가 두드러지는 만큼, 리긴과 로웰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리긴이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것에 싫증이 났고, 동생을 데리고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관계는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리오타와 이스트우드 사이의 장면은 많지 않으며, 이는 브로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리긴이 로웰을 왜 싫어하는지, 로웰이 리긴을 왜 싫어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로웰에 대한 이해도 부족합니다. 리오타는 자신감 있게 대사를 소화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그저 폭력적이고 냉혹한 사람으로 그려질 뿐, 완성된 인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가족이 곧바로 만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영화가 절반 이상 진행된 후에야 앙투안과 머서가 로웰의 범행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 후 영화는 머서와 앙투안이 로웰의 분노를 피해 살아남기 위한 싸움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액션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개는 오히려 느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머서가 로웰의 부하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급하게 조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발전된 경쟁과 원한을 보는 즐거움을 포기한 탓일 수도 있고, 액션 장면 촬영 자체가 다소 단조로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1992”는 장르적 요소를 잘 소화하지 못합니다. 편집 측면에서도 어설픔이 드러나며,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기록 영상을 어색하게 삽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브로멘은 이러한 장면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보여줄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줄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영화의 음향 역시 부조화를 이루며, 지나치게 깔끔한 재즈 음악을 사용하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더 땀에 젖고 더 거친 느낌을 줘야 할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흑인 남성들이 백인 범죄자들을 피하는 긴장감과 영화 외부 세계에서 백인들이 흑인 시위대를 피하는 모습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존재합니다. 머서와 앙투안의 분노 또한 영화가 잘 이해하고 있으며, 리오타는 그의 마지막 완성된 영화에서 인상적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다만, 이 모든 요소들이 인간적인 면에 더 집중하여 이들의 관계에서 드라마를 찾는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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