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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Devil Wears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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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1세기의 새로운 뉴욕커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그 사람
 
뉴욕은 미국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현대 문화,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심지였다.

앤디 위홀이 펜실바니아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무작정 상경을 해 정착한 곳이 뉴욕이었다.

빅 애플(a big apple)이라고 불렸던뉴욕은 미국의 젊은이에게 성공과 희망의 도시였다.
 
지금도 뉴욕사람은 자신들이 아메리칸이라고 불리우는 것보다 뉴욕커라고 불리우는 것을 선호한다.

21세기 들어서 뉴욕이 어떻게 변신할지 과연 50여년간 유지해왔던 현대미술및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심지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자뭇 궁금하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20세기 뉴욕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의 대중 문화가 상위문화를 점유하고 문화는 할리우드 스타 중심으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렇다해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인기 스타란 아이콘은 사실 그 대상보다는 대상의 이미지에 주목하고 그 이미지에 반사효과를 얻으려는 대중들의 심리가 반영되었다는 사실에 우린 주목해야 한다.

즉 마릴린 몬로를 좋아하고 제임스 딘을 좋아했던 것은 '섹스에 대한 욕망과 이미지의 반영'이었고 대중들은 항상 그 대상을 바꾸고 있을 뿐이다.
 
뉴욕은 여전히 금융과 미디어, 그리고 현대문화의 중심지로서 젊은이들에겐 매력적인 도시이고 가능성의 도시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감독한 데이비드 프랑켈은 발끝부터 머리까지 대표적인 뉴욕커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뉴욕커이다. 뉴욕커 중에서도 신분이 성골 쪽에 속하는 진짜 뉴욕커이다.
 
뉴욕 타임즈의 이사로 근무한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뉴욕을 움직이는 중심 소사이어티의 맛을 일찍부터 맛보고 성장 한 후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TV 프로덕션에 뛰어들었다.

요즘 새롭게 뉴욕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미즈들의 더 섹스엔드 시티의 초기 각본을 그가 썼다.

데이비드 프랑켈이 로렌 와이스버거의 책을 영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원작자는 실제로 보그의 편집인인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이 영화는 물론 허구적인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을 다시 창조하고 그것이 이즈음 뉴욕의 새로운 아이콘이라는 것을 우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의 새로운 아이콘, 섹스에의 열망을 패션으로 포장한 캐리어 우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대중 문화 현상에 대해서 주목한다.
 
신분으로 보면 성골 쯤에 속하는 오리지날 뉴욕커인 데이비드 프랑켈이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으려 했는가?

그가 보여 주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과연 많은 관객들이 본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패션에 기호와 명품에 대한 열망인가?
 
그리고 영화는 눈요기에 머물고 있는가? 그리고 영화에 일부 눈이 조금 뜨인 매니아들은 한결같이 앤의 남자 친구로 나온 네이트(Nate, Adrian Grenier)가 잘못된 캐스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를 잘 못 읽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패션이 펼쳐지는 이 영화는 원래부터 두 개의 대립된 시각으로 구성되어있다.
 
요리사인 남자친구와 평범한 그녀의 친구와 직장 상사인 미란다를 중심으로한 화려하고 감각적인 세계이다.

앤이 가지고 있던 사회와 환경은 아주 평범한 뉴욕의 소시민의 사회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요리사로 일을 하고 있고 그녀는 대학의 미디어학을 전공하고 그 계열에 취직을 하려다 패션회사의 편집인의 세컨 보좌역으로 취직을 한다.

그녀는 입사를 해서 동료들에게 '할머니 스커트'를 입고 출근했다고 조롱을 받을 정도로 패션에 대해서 무감각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변신을 거듭하다 그것이 그녀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과감히 그 직장을 버린다.

사실은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악마만이 프라다를 입는다'인데 묘하게도 젊은 여인이나 관객은 그녀가 갈아입고 출근한 명품에 눈이 멀고 만다.

그리고 캐리어 우먼으로 빈틈없는 미란다의 생존 전략에 주목을 하고 백만 명의 여자들이 원하는 직업, 화려한 그녀의 직업, 패션회사에서 샘플로 제공하는 옷과 가방 구두 기타 악세사리를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직업에 주목을 하고 만다.
 
명품과 패션

사실인지 몰라도 이 영화를 본 젊은 여성들은 앤이 명품을 입고 나오는 장면 그 같은 옷을 그냥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사실, 화려한 파티와 유명인사들 속에서 있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고 한다.

내용 중에 한 대사처럼 이젠 패션이 기능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도구라는 점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심리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앤은 끊임없이 갈등을 한다.
 
성공을 위해서 과연 자기의 기본적인 삶과 행복도 포기해야 하는가?

그녀의 상사이고 편집자인 미란다는 화려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결코 가정적으로 행복하지는 않다.
 
그녀는 두 번째의 이혼을 할 처지에서 딸들을 걱정하고 자기의 캐리어가 언제 몰락할지 몰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삶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주변은 자기 출세를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앤의 아버지는 왜 너는 새벽 두시까지 일을 해야하고 저녁을 먹는 중에도 왜 전화를 받고 일을 처리해야하는가 걱정하고 남자친구도 그녀의 새 직장과 변신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다.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선 몇 마디의 대사로 처리가 되고 화려한 의상과 악세사리에 속에서 마치 길에 떨어진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젊은 여성 관객들이 앤의 상대역으로 나온 두 남자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고 있는데, 사실 영화의 입장에선 최고의 배역이다.
 
앤의 아버지나 남자 친구들 그리고 주변의 친구와 추근거리는 패션계의 남자 역으로 나온 배역들을 왜 선정했는가, 그녀가 옷을 갈아 입고 신발을 신는 장면 보다도 더 가볍게 처리한 사실과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차림에 주목하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계속 미란다의 신임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끝내는 맹목적인 출세지상주의와 미란다의 삶에 실망을 하고 그녀를 떠나 다시 촌스런 옷으로 갈아입고 새 직장을 찾으러 다닌다.

앤은 결과적으로 명품과 최고의 패션이 갖는 허위의식과 그 허구성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패션은 이제 기능이 아니라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옷만으로는 곁코 자신을 감출 수도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다.
 
명품을 입는다고 삶이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영화는 마치 명품의 옷을 입고 프라다를 사기 위해 인생을 사는 여자들의 눈을 멀게할 수도 있는 영화이다.
 
묘하게도 이 영화를 본 많은 젊은 여인들이 바로 이 부분에 주목을 하고 시선을 확장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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