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쩌라고 배째!! 조선의 취옹화사(醉翁畵師) 김명국 악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악귀다 ㅡ 취옹화사 김명국 ㅡ 조선 시대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지고 높이 평가받은 화가는 신필(神筆)로 불리는 김명국(金明國)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처럼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대중에게는 낯익은 이름이 아니다. 그의 그림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 그밖에 더보기 유머를 알았던 충신 이항복 금강산도 동대문밖에 있다 ㅡ 조선의 입담 개그 마스터 이항복 ㅡ 조선 시대 500년 역사에서 이항복처럼 해학과 풍자가 뛰어난 인물도 드물다. 그는 선조와 광해군 때 가장 강직한 명신 가운데 한 사람이고, 학문이 뛰어난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다섯 번이나 병조판서를 역임할 정도로 경륜이 높기도 했으나, 그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 때문이다. 이항복은 1556년 명종 11 10월 한양의 북촌에서 태어났다. 고려말의 대문장가 이제현의 후손으로, 부친은 참찬 벼슬을 지낸 이몽량, 어머니는 결성 현감 최윤의 딸이다. 그는 태어나서 이틀 동안 젖을 빨지 못했고, 사흘 동안 울지도 않았다. 이에 아버지 이몽량은 아들이 걱정이 되어 소경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 했다. "걱정할 .. 더보기 조선 최고의 여장부 송씨 영의정 남편의 수염을 몽땅 뽑고 당당히 사약을 받다 - 조선 최고의 여장부 송씨 - 조선 시대 여성이 가장 고통을 받은 것은 일부다처제에서 비롯된 축첩의 문제였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부모의 결정에 따라 혼례를 올린 뒤 막상 정을 붙이고 살려니까 남편은 이런저런 이유로 첩을 들이고, 집 안에서 거느리는 여종까지 친압(親押, 겁탈)하여 성의 노리개로 삼았다. 그러나 여자는 항의도, 반발도 할 수 없었는데 투기를 하면 칠거지악이라고 하여 시집에서 쫓아내니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인내해야 했다. 여자를 꽁꽁 묶은 올가미는 칠거지악 외에도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삼종지도가 있었지만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조선의 뭇여성들이 축첩 문제로 고통 받을 때 당당하게 여성의.. 더보기 이전 1 ··· 57 58 59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