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포기한 소녀의 소통의 도구, 피아노
영화의 첫 장면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오버 보이스로 다음과 같이시작된다.
“당신이 듣는 이 소리는 내 말소리가 아니다.
내 마음의 소리다.
나는 여섯 살 이후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 내가 말을 못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것을 나의 불길한 재능 때문이라고 하셨다.
… 아버지는 본적도 없는 남자에게 나를 시집보냈다.
내 딸과 나는 곧 그의 집으로 가게 된다.
내가 말을 못 하는 건 상관없다고 남편 될 사람은 말했다.”
첫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장면은 사실상 드러난 구성 전개로는 불 필요한 장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아주 의도적이고 치밀한 계획으로 집어 넣은 듯한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화자의 주인공 에이다는 벙어리는 벙어리인데...들을 수 있는 벙어리로 일종의 정신적인 실어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다.
영화의 중간에....에이다의 9살난 영악스런 딸은 주위 사람에게.....자기 엄마가 말하길....사람들이 말을 하는데..그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은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앓고 있는 실어증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이러한 가상적인 추측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직접적인 증거물이 더 있다.
예를들어 영화의 마무리 장면 중 그녀가 섬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면서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피아노를 '바다에 버리라'고 말한다.
베인즈가 영문을 몰라 망서리는 사이에 그녀는 줄을 풀어 피아노를 바다에 빠트린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된 에이다는 말을 하기 시작하고 뒤늦게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선천적 장애자가 아닌 에이다는 심리적인 이유로 말을 포기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자기의 피아노와 맺고 피아노와의 소통을 매개로 하여 차단하고 억제했었다.
그녀는 이렇게 아주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스런 여자아이였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피아노는 당연 세상과 연결하는 소통의 도구이고 세상이 자신에게 다가서고 타인이 불필요하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 즉 소통을 차단하는 '소통막이'이기도 하다.
그녀는 피아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피아노와 대화를 하듯이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피아노의 건반에 자신의 소리를 쏟아붓고 표현한다.
피아노와 남편
에이다의 아버지는 벙어리에 미혼모인 그녀를 한번도 보지 않은 뉴질랜드에 사는 잉글랜드 남자에게 시집을 그녀는 딸과 함께 피아노를 가지고 부두는 물론 선착장도 없는 뉴질랜드의 오지의 해안에 도착한다.
그리고 하루밤을 보내고 난 후에 남편이 될 사람인 영국인이 짐을 운반할 원주민을 데리고 그녀에게 나타난다.
남편이 될 남자는 운반 비용 문제로 무거운 피아노를 포기할 것을 강력하게 종용하고 결국은 피아노를 놓고 남자를 따라가게 된다.
그녀는 그녀에게 절대적인 피아노를 서글픈 마음으로 돌아보면서 피아노가 있는 해안을 떠나게 된다.
결혼을 해서 살 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새로운 환경과 피아노를 가져오지 못하게 한 남편에게 정을 못 붙이고 타인처럼 지내게 된다.
부부이지만 그녀는 딸과 같은 침대를 쓰고 사실상 남편과 부부 생활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주 잘 묘사된 전형적인 영국인이다.
그의 성격이 드러난 몇 장면 중에 하나를 보면, 에이다가 식탁 위에 건반을 그려놓고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며 딸에게 노래 를 부르게하는데 그는 이런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탁자에 건반을 새겨놓고 피아노치는 흉내를 내는 그녀를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아주 이상하게 생각한다.
극도로 사실적이고 상상력이 부족한 남편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하기는 하나 잠자리를 거절하는 자기 부인이 언젠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남자이다.
아마 당시의 한국남자 같았으면 분명 '이년이 미쳤나!'소리치고 두둘겨 패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 틀림없다.
에이다는 피아노가 그리워 자기의 짐을 운반한 원주민인 베인즈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피아노를 놓고 온 해변으로 데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베인즈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쌀쌀하게 거절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주목해봐야 한다.
왜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아닌 자기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원주민 '베인즈'를 찾아 갔을까?
그녀는 문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지못해 베인즈는 에이다와 그녀의 딸을 그 해변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그녀의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돌아온다.
베인즈는 그 후 그녀의 집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어느날 그는 에이다의 남편에게 자기가 피아노를 가지고 그 대신 자기의 땅을 주겠다고 뜻밖의 제안을 한다.
무려 80 에이커(약 만평)에 해당하는 땅에 놀라 남편은 그 땅이 혹시 몹쓸 습지가 아니냐고 의심하며 묻는다.
이 영화는 피아노를 둘러싸고 미묘하고 복잡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도덕성과 순수, 그리고 욕망
무려 80 에이커(약 만평)이 되는 땅을 베인즈가 제안하자 남편은 습지가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그에게 어리벙벙해진 남편은 피아노 레슨까지 부인에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피아노를 땅과 바꾸었다고 말하고 피아노를 그에게 가르쳐주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기 피아노라고 말하며 불같이 화를 내자 남편은 오히려 결혼 한 사이인데 네것이 어디있냐고 화를 낸다.
이렇게 피아노에 대한 거래는 남편과 베인즈로 부터 시작된다.
에이다는 마지못해 베인즈의 집으로 가 피아노를 가르친다.
그러나 원주민 베인즈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 보다 듣겠다고만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피아노를 배울 생각은 사실상 없었고 그녀에게 대한 연정을 견디지 못해 피아노와 80 에이커의 땅과 바꾼 것이다.
이것이 영화에서 피아노를 매개로 한 첫번째의 거래였다.
두 번째의 거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베인즈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에이다의 목에 베인즈는 갑자기 키스를 한다.
에디다는 놀라 일어선다.
그러자 화를 내고 있는 그녀에게 베인즈는 새로운 흥정을 제시한다.
건반의 키 수 만큼 여기를 와주면 피아노를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새로운 제안을 한다.
전체 건반이 아닌 오직 검은 건반 수 만큼하자고, 베인즈는 이에 승낙을 하고 그녀는 방문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러나 베인즈는 에이다에 대한 연정과 욕망을 견디지 못해 그녀가 가고 난 다음에 옷을 모두 벗고 피아노를 어루 만지며 그녀의 몸을 더듬듯 닦는다.
위험한 거래는 계속된다.
에이다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그는 피아노 밑으로 들어거 치마를 올리라고 그녀에게 요구한다.
그녀는 치마를 올리자 더 올리라고 요구하고 베인즈는 그녀의 스커트 밑의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바라보고 구멍난 곳에 손가락을 대고 문지른다.
그리고 다음날 베인즈는 그녀에게 그녀의 팔이 보고 싶다고 상의를 벗으라고 요구한다.
그녀의 곁에 가서 손목부터 팔을 어루 만진다.
놀라는 그녀에게 다시 두 키를 제시한다.
이것이 피아노를 매개로 한 세 번째의 거래였다.
네번째의 거래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베인즈는 에이다가 벗어놓은 상의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마치 그녀를 애무하듯 얼굴에 대고 만진다.
피아노를 치고 있던 에이다가 이 모습을 보고 달려들어 상의를 빼앗자 베인즈는 다시 새로운 제안을 한다.
4개의 키로 처줄테니 침대에 가서 가만이 같이 누워만 있자고 한 것이다.
이에 에이다는 다시 5개로 하자고 해서 그들은 침대로 간다.
그리고 베인즈는 엎드려있는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섯번째의 거래로 그녀는 옷을 모두 벗고 만다.
베인즈는 10개의 키를 제시하고 모두 옷을 벗고 눕자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옷을 벗고 눕는다.
피아노를 매개로 한 여인의 속성
여기서의 피아노는 이제 에이다 그녀에게 더 이상 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하나의 건반에 드러난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우선 빼앗긴 피아노를 다시 찾으려는 물욕이 게재되어 있겠지만 남자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하나 하나의 건반을 다시 찾게되며 사실상은 피아노에 의지했던 소통과 단절을 피아노를 통해 다시 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했듯이 다섯번째의 거래가 있었다.
이것은 외부적으로 '순수'하고 배치된 욕망의 구현 같이 보인다.
베인즈가 80 에이커를 주고 산 피아노는 사실상 아주 비싸게 치인 셈이다.
어느 날, 에이다가 베인즈의 집에 들어서자 베인즈는 이제 더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말하고 너 때문에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있다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피아노를 이제 돌려줄테니 오지말라고 말하고 에이다를 돌려 보낸다.
그리고 베인즈는 피아노를 돌려 보내준다.
남편은 이에 놀라 토지를 다시 되돌려줘야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베인즈에게 가자 그는 에이다에게 준 것이라고 말해 다시 놀란다.
피아노와 80 에이커를 바꾸겠다는 제안에도 자기의 부인에게 그것을 다시 주겠다는 제안도 모두 철저한 합리성으로 길들여진 그에게는 사실상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체 놀라며 받아들인다.
'순수에로의 환원'
피아노를 돌려 받기위해 처음에 몸을 흥정한 에이다와 베인즈, 그리고 에이다에 대한 욕정으로 끊임없이 흥정을 제의하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 전개 과정에 아마도 도덕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할 것이 틀림없다.
이들에게 에이다나 베인즈의 욕망을 순수라고 말하면 아마도 크게 반발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에 이들이 서로 사랑을 하고 단지 외부적인 도덕적인 관념의 무게를 덜기 위해, 이를테면 반즈는 유부녀를 대상으로 접근하는 자기의 도덕적 책임감을 거래로서 그 무게를 덜려고 하고 에이다는 피아노를 돌려받는 구실로 서로 거래하는 것으로 도덕성의 중심에서 비껴서려고 했다면 이들의 관계는 다시 묘하게도 '순수'로 환원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
이렇게 순수라는 관념은 때로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다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뒷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에이다는 돌려 받은 피아노를 자기 집에서 치다 그녀는 베인즈를 그리워한다.
이제 더 이상 베인즈의 집을 방문할 명분은 없다.
그녀는 어린 딸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보내던 베인즈는 그녀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너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괴롭다,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다...그리고 그녀에게 이제 돌아가라고 한다.
그녀는 가려다 돌아서며 마음을 몰라준다고 바엔즈를 때리다 주저 앉고...둘은 마침내 거칠게 포옹한다.
그리고 성관계를 갖고 에이다의 남편이 올라와 벽 틈으로 그들을 지켜 본다...그러나 남편은 지켜만 보고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딸하고 장난치며 즐거워하는 에이다를 지켜 본다.
다음 날, 에이다는 다시 정신 없이 바네스의 집으로 가다..숲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붙잡힌다.
남편은 그녀를 붙잡고 섹스를 시도하려 하나..그녀는 아주 강하게 저항하고 딸이 찾아 오는 바람에 남편의 숲에서의 시도는 무위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다의 방에 못질을 해 감금을 시킨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사랑과 의도가 순수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만약에 에이다가 천연덕스럽게 남편하고 섹스를 하고 원주민인 베인즈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논 외의 문제가 된다.
일종의 부모의 선택에 의해 결혼을 하고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인즈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고 그녀는 베인즈 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묘하게도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불륜적 관계를 순수한 관계에서 다시 순결한 사랑의 관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감금이 해제된 그녀는 피와 살 같이 아끼는 피아노의 건반을 떼어내어 사랑의 메시지를 불로 지져 새겨 그녀의 딸에게 베인즈에게 갇다 주라고 시킨다.
9살 난 딸은 처음에 완강하게 거절하다 결국은 엄마의 부탁을 듣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두 갈래의 길에서 베인즈에게 가는 대신 수양 아빠가 일을 하고 있는 언덕으로 가서 그에게 주며 '엄마가 베인즈에게 전하라고 했다'고 말한다.
그 건반에 새겨진 베인즈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읽은 남편은 작업하던 도끼를 들고 뛰어내려와 그녀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난 너를 믿었는데..그리고 도끼로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 놀란 딸에게 다시 싸주며 베인즈에게 갇다 주라고 소리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다른 손가락,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다른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소리친다.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되면 아마도 많은 일반적인 남자들은 '고년 남편 말 안듣고 못 된 짓 하더니 잘 되었다'고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도덕성이 외눈박이로 만들 수 있는 함정이다.
이 사건을 가지고 모랄리스트는 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이다의 시각, 한 여성의 성에서 바라보면 아주 가슴아픈 일이 틀림없다.
사실 자기 부인이 외간남자하고 성행위를 할 때에 그것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돌아와 여전히 모른체 하며 자신을 자책하는 남자란 정말 현실 속에서 만나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손가락이 잘렸어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다음 전개되는 이야기의 소 제목을 '고통과 순수'라고 써 보겠다.
사실 에이다의 마음은 이제 순수를 넘어선 순결한 지고지순한 상태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다섯번째의 거래가 있었던 거친 인간적 본능과 욕망을 순수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렇게 환원된 에이다의 순수를 다시 순결하고 지고 지순하게 확실한 사랑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있다.
고통과 순수
남편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총을 들고 베인즈를 찾아간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사과하는 베인즈에게 에이다를 데리고 섬을 떠나라고 말한다.
에이다와 그녀의 딸과 베인즈는 배에 피아노를 실고 섬을 떠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몸일뿐이다.
좁은 배,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서 다시 그녀는 그녀의 본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바다 한 가운데서 갑자기 그녀는 피아노를 버리라고 딸을 시켜 베인즈에게 전한다.
그러나 베인즈는 그녀의 속내를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거절하자 에이다는 피아노를 묶은 줄을 풀어 바다에 빠트린다.
그리고 깊은 바다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피아노에 감긴 로프의 한 가운데 스스로 발을 밀어 넣는다.
복잡하고 미묘한 여인의 심성이 교차되어 보여지고 있는 장면이지만, 이것은 피아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아직도 그 피아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과의 거친 갈등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녀는 피아노와 함께 깊은 바다로 빠져 버린다.
피아노 줄에 발을 묶인 그녀는 깊은 바다로 빠져 들어가다 마침내는 로프에 묶여있는 신발을 풀어내고 다시 바다 위로 오른다.
이 짧은 장면은 사실상 몇 줄의 말로 다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다시 여자의 속성을 규명하는 테제로 이 장면 중심으로 다루고 여기선 '순수와 고통'이라는 한정된 주제로만 접근을 하겠다.
아끼는 피아노 건반의 키를 떼어내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 보낸 그녀가 다시 이제 피아노를 버리라고 베인즈에게 왜 말을 했을까?
그 피아노는 어쩌면 그녀의 유년 시절과 소녀 시절과 바꾸고 혹은 그녀의 '말'과 바꾼것이었는지 모르는데.....
에이다는 분명 이제 집착할 대상이 아니고 집착할 필요도 없고 피아노 대신 진정하게 사랑하는 한 남자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그동안 점유했던 그 피아노를 확실하게 버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섬세한 마음의 갈등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닷속으로 들어간 피아노가 감긴 줄에 자신의 발을 밀어 넣은 것이다. 그리고 피아노와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그녀는 묶인 줄을 신발을 벗어서 풀어버리고 물위로 쏟구쳐 나온다.
이것은 마치 지난 고통을 마지막 진통으로 풀어헤쳐 버리고 나오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든 제인 캠피온은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인류학에서 빼놓지 않는 주제가 인간의 통과의례 과정이다.
그녀는 물론 여자라는 자기의 성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아주 사려깊고 섬세하게 터지해나갔다.
그녀는 다시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에 호주에서 필름을 공부한 특이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한 모든 경력이 물론 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리즘의 화면에 절제된 묘사가 돗보이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새로운 삶이 묘사되고 있다.
금속으로 만든 손가락을 끼고 피아노를 가르치며 이제 입이 터져 말을 다시 시작하게 되고 말을 배우는 에이다, 그녀의 삶의 과정은 자신과 세상과의 끊어진 단절 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통을 위한 말을 찾게 되고 전부였던 피아노를 도구성으로 다루며 찾게 된 것이 바로 '순수'의 새로운 영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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