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실수와 막연한 행동이 어느 날 다가와 자신의 운명의 뒷덜미를 잡을 때 그대는 어떻게 삶을 움켜질 것인가?
1. 우연에 넘어질 수 있는 허약한 우리들의 삶
우연한 실수와 막연한 행동이 어느 날 뒷덜미를 잡아채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돌부리나 나무 가지에 걸려 넘어진 것 처럼 우연은 어느 날 우리도 모르게 딴지를 걸고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뺏앗아 가기도 한다.
실제로 길을 가다 건물에서 떨어진 간판에 맞아 죽기도 하고 날아온 야구 공에 맞아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삶이 세계로 넒어지고 다양해 지면서 우린 더욱 다양한 우연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연 뿐만이 아니다.
생각없이 저지른 실수가 자신의 운명의 뒷덜미를 잡고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파탄에 빠트린다.
인도에서 어느 여인이 우연히 버스를 잘못탔다가 타지에서 살다가 25년 만에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삶에 있어서 우연이란 불확실성은 막연한 행동, 생각없이 한 행동이 불러들이는 재앙이다.
때로는 이 우연성이 행운을 불러들이고 운명을 반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으려면 우린 미리 우연성이 주는 재앙을 반전 시키줄 아는 지혜와 불 이익을 이익으로 바꿀수 있는 행동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2. 소통의 부재는 우연성에 더욱 우리의 삶을 집어 넣는다.
아카데미 후보상에 올라 작곡상을 받은 영화 <바벨>은 바로 우연성과 생각없이 한 행동들이 나비 효과와 같은 파장을 일으키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이다.
감독이 바벨이란 제목을 붙인 까닭은 <소통>의 불 완전함과 일본어와 모르코어 스페인어 그리고 영어로 제작된 시 공간을 넘는 영화의 배경에서 붙인듯 하다.
성경에서 바벨이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징계하는 수단으로 내린 형벌로 <소통의 혼란>의 의미로 해석된다.
야훼는 하나의 언어권을 여러 언어권으로 쓰게 하는 징벌을 인간에게 내리고 그 고통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벨>에는 <언어 소통의 부재>가 오는 혼란 보다는 <오랜 관습적 행동>이 불러 일으키는 불이해에 귀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는 우연히 일본인 관광객에게 소총을 얻은 모로코 인이 이웃에 사는 농부에게 이 총을 팔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그리고 있다.
소총을 산 이웃은 양을 지키는 아들에게 주며 자칼로부터 양을 보호하라고 한다.
이 아들들이 소총의 성능을 시험한다며 무심코 지나가는 미국 관광객을 태운 버스를 겨냥해 발사하고 그 중에 한 여인이 총을 맞는다.
이 사건이 보도 되며 세계의 언론은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라고 발칼 뒤집히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자 미국에선 이들의 아들과 딸을 돌보는 멕시코 보모가 안절부절하며 당황을 한다.
아들의 결혼식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돌아오지않자 보모는 자신이 돌보는 백인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떠난다.
3. 인드라망의 네트웍이 구현된 세계의 실상
모로코 경찰들은 조사 끝에 테러리스트가 아닌 산골 마을의 주민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이들을 추적한다.
겁에 질린 아버지는 두 아들을 데리고 도망을 가다 경찰에 발각되고 총격전에 아들을 결국 잃고 만다.
다시 영화는 총을 선물한 일본인의 근황을 보여 주고 있다.
총은 원래 자신의 부인이 자살한 것이었다는 것을 영화의 종반 장면에서 노출 시키고 있다.
농아인 딸은 부부 지간의 소통의 부재의 표현으로 감독은 의도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듯 보인다.
고등학생인 딸은베란다에서의 투신자살을 꿈꾸며 자신의 엄마가 총으로 자살하지 않고 투신자살을 했다고 상상하며 주변에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멕시코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보모는 미국에 입국시 때 아닌 곤경에 부딪치게 된다.
출입국관리원은 보모에게 '아이들을 부모에게 허락을 맡고 데리고 갔느냐?'고 묻는다.
보모가 답변을 못하자 출입국 관리원은 차를 옆에 데라고 한다.
그러자 이들을 동행해 운전하던 젊은 멕시코인은 그대로 도망을 가다 아이들과 보모를 사막의 한 가운데 내려놓고 혼자 떠난다.
이렇게 모로코의 작은 동네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은 일본인과 멕시코인과 얼기설기 엮어진 오늘날의 현실, 네트웍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화엄학의 본질인 '인드라 망'이다.
4. 소통의 길은 열었는데 어떻게 소통할줄은 모른다.
여기서 우린 다시 두 문화와 두 관습과 두 상식의 충돌에 접하게 된다.
자신의 아들의 결혼식에 반드시 참석해야하는 엄마와 자신이 직업으로 돌보고 있는 두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다.
멕시코적 상식이나 한국의 상식이라면 이런 경우는 당연히 용납이 될 수 있고 이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구의 관습으로 보면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결코 결혼식에 가선 안된다.
그것은 상식을 넘어선 때로는 납치나 월권행위로 사법적 처벌 대상으로 될 수도 있다.
결국 그녀는 16년 간 살며 얻은 영주권과 미국의 대한 아메리칸 드림을 뺏긴 체 쫓겨나고만다.
한 중동의 소년의 우발적인 총기 난사가 불러 일으킨 파장을 씁슬한 시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이 영화는 21그램으로 뛰어난 구성력을 보여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감독의 작품이다.
미국인 관광객의 남편 역으로 브래드 피트와 총을 맞은 부인 역으로 케이트 블란쳇이 조연급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소통의 부재 현상을 간접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감독은 나라와 나라 간의 언어의 소통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소총을 모로코인에게 주고 온 것은 부인의 자살이 동기 였고 부인의 자살은 부부 지간의 소통의 부재였었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바벨이란 제목을 굳이 확대 해석해 영화의 즐거리를 개관해 보면..결국은 작은 소통의 부재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걷잡을 수 없는 마치 바벨탑을 지은 후의 대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영화 속에서 '소통의 부재' 보다는 '우연성'과 '무책임함' '방만한 무주의성'이 주는 삶의 위험성과 흔들리는 삶을 더 유심히 지켜보았다.
우린 여기서 '소통'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깨달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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