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다빈치 코드(Davinci Code)

728x90
반응형

728x90

영화, 다빈치 코드의 기대기,
 
원작자 댄 브라운이 기댄 두 기둥,

 
한 열흘 만에 영화관을 찾아 다빈치 코드를 보았다.
 
일 주일에 보통 2번 내지 3번 영화관엘 들러 평균 6편 정도의 영화를 보는데, 바쁜 작업과 몸 컨디션이 좋지않아 오래간 만에 영화관엘 들렸다.

다빈치 코드는 영화로 제작되기 전에 이미 10여 개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된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이미 사실성 여부로 시빗거리가 되기도 했고 모작 여부로 고소가 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제시 되었던 많은 주제들이 과연 진실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것은 작자가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기존 사실에 기대기를 했기 때문이다.

'신뢰에 기대기'는 일종의 미러 효과와 같다. 즉 이미 사람들에게 어떤 믿음과 신뢰를 확보한 것에 기대인다는 것이다.
 
소설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를 '어떤 사실' 이나 '어떤 역사성'에 기대어 그 허구성을 극복하고 오히려 기존 사실을 꽈배게처럼 꼬이게 만들고 사실을 비틀어 만들어 보이게도 한다.

예를 들어 다빈치 코드 같은 경우도 이런 반사효과 때문에 기존의 경직스런 종교 지도자들은 반대하고 강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우선 '다빈치 코드'가 기댄 두개의 중심 기둥은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성서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알려진대로 천재 화가이었고 발명가 이었으며 위대한 해부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에 기대게 하고 성서의 중심인 예수의 삶에 이야기를 기대고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긴박하고 치밀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는 현학성이나 알듯 말듯한 기호나 신비주의로 포장하고 있다.
 
또 이야기의 무대를 긴박하게 파리에서 런던으로 다시 시골의 한 사원으로 공간을 이동시키며 교묘하게 독자들의 눈을 현란시키며 우왕자왕하게 머리를 흔들어 놓고 신비스럽게 보이게 하고 있다.
 
원작을 쓴 저자가 많은 재료를 준비하고 치밀하게 원고를 준비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처음부터 어설프게 보인다.
 
하버드의 종교 기호학자인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 교수의 강의와 주장도 어설프다.
 
어째 그가 주장하고 설명하는 내용이 종교 기호학을 기본적으로 다룬 칼 융의 견해를 넘어서지 못한 지극히 아마추어 수준이다.

당연 필자의 눈에는 이 중심 인물부터가 문제가 있다. 예를들어 작가가 작중 인물을 창조할때 피와 살을 붙여 그럴듯한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건부터 결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소설은 물론 허구이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며 진짜인것처럼 만들고 독자를 빠지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사실은 아주 구성도 어설프고 짜집기 성도 강하게 보인다.
 
살해당한 쿠레이터의 손녀와 초청된 교수가 살인 용의자로 추적을 받는 것도 전혀 상식 밖의 구성이다.
 
또 교수의 호주머니에 처음부터 넣어진 추적발신 장치는 완전 넌센스적인 이야기로 논리성을 갖춘 사람은 이 이야기에 빠져들래야 들 수가 없다.

더욱 사건이 발생한 사건 장소를 보전하는 경찰의 경비와 세계 최고의 보물들이 관리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경보 장치와 관리는 설득력이 완전 배제되어 있다.
 
교수와 손녀가 이 전시실 저 전시실을 다니고 그림을 손대는 대도 경보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것은  완전 만화적 상상력을 기본으로 한 배경이다, CC 카메라도 없고 경비원도 없다.

이렇게 기본적인 디테일을 무시하고 구성한 이야기 전개는 사실상 소설보다는 만화에 많이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5백만의 대중들을 끌어들여 시간을 뺏은 것은 그의 뛰어난 현학성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고, 모나리자 그림도 이미 본 일도 있고 최후의 만찬그림도 보고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인지도 안다.

그런 인지도를 미러 효과로 이용하여 대중들을 속이고 있다.

이 엉성한 사건전개를 이끌어 가고 있는 힘은 이미 위에서 말한 대로 <신뢰에 기대기>이다.
 
다빈치와 알려진 그림, 그리고 기존의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묘하게 비틀어가며 신비주의를 마치 조미료처럼 섞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인 댄 브라운이 기댄 것 큰 기동은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성서이고 작은 기둥들은 역사적인 지명성과 현장들이었다.
 
작가의 입장에선 이런 '교묘하게 현학성에 기대기'로 성공한 이 재치를 배워 나도 한번 써먹고 싶다.

그러나 지식인의 입장에선 거의 사기적인 행위나 다름없다.

대중들을 멍청하다고 설정하고 요리조리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이 문열이 흔히 써먹던 수법(사람의 아들과 영웅시대)등에서 써먹던 방법이라 경계했던 것인데, 국제 시장에서 아직까지 먹힌다는 것이 흥미로운 사실이다.

기대기, 영화 제작자가 기댄 세 기둥

이젠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야할 것 같다.

영화를 제작한 이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2500만부 가량이 팔린 댄 브라운의 원작을 영화화하며 2,5백만의 인지도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두 번 째로 감독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사람은 <뷰티풀 마인드>와 <아폴로 13>을 감독한 론 하워드이고 미국의 국민 배우라고 해도 좋을  톰 행크스에 기대고있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오드리 토투도 최근에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에서 뜨고 있는 배우이다.
 
여기에 노련한 프랑스 배우인 장 르노가 형사역으로 나왔다.

이런 좋은 조건에 물론 억2500만달러 규모 예산을 투입해 블록버스터로 다시 창조했으니 이 영화는 당연 대단한 영화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솔직히 별로다. 필자의 눈에는 원작의 문제점을 그림으로 깔아놓으니 그 문제점이 더 잘 노출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한 마디로 돈 주고 보기는 정말 아까운 영화이다. 구성부터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투의 연기도 이번에는 별볼일 없었다.
 
장 르노는 요즘 단골 형사역으로 나오는데 아마 내가 본 최악의 형사 연기를 이 영화에서 본 것 같다.

엉성한 킬러의 연기도 어설프고 배우의 연기중 그래도 수준을 유지했던 것은 단지 탐욕스럽고 음흉한 신부역의 연기가 유일하게 돗보인 영화였다.

끝으로 신앙인으로 한 마디,

 예수가 결혼 했으면 어떻고 숨겨진 자식이 있으면 설령 어떤가? 그것은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신의 문제이지 인간인 내 비즈니스 아니다.
 
막달라 마리아하고 결혼을 했던지 섹스를 했던지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고 내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사람의 아들로 온 그가 섹스도 해보고 좀 더 인생을 질퍽하게 경험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래야 좀 더 인간적이고 그래야 더 인간의 비즈니스를 잘 이해할 것이 아닌가? 
 
오입도 한번 못해보고 오르가즘도 한번 못 느낀 사람이 어찌 인간의 일을 알것인가? 솔직히 나는 예수님이 숫총각은 아니기를 바랬는데 결혼까지 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루머가 있다니...얼마나 인간적인가? 
 

728x90
반응형